EBS 2018 적용 고전시가08 [0103 : 독락당(박인로)]



푸른 담쟁이 헤치고 독락당을 지어 내니[독락당을 지었으니]

그윽한 경치는 견줄 데[다른 곳과 비교할 바가] 전혀 없네.[화자가 ‘독락당’의 경치를 예찬의 태도로 서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. 참고로 ‘독락당’을 소재로 한 본 글과 관련하여, ‘문제 03번의 <보기>’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. “이 작품은 작가가(작가 박인로가) 조선의 성리학을 정립하는(성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)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이언적이 머물렀던 독락당에 찾아가, 이언적을 흠모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. 독락당은 이언적이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학문에 정진하였던 곳으로,[학문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던 곳으로] 이 작품은 독락당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이언적의 유지를 받들고[‘유지’는 ‘죽은 사람이 살아서 이루지 못하고 남긴 뜻’을 의미하기에, 화자가 ‘독락당’을 노래하고 있는 본 시적 상황이 ‘이언적의 죽음 이후의 상황’임을 알 수 있습니다] 그의 풍모를 기리는 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. … ”]

수많은 긴 대나무 시내 따라 둘러 있고

[A] 만 권의 서책은 네 벽에 쌓였으니[‘독락당’이 학문을 탐구하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]

왼쪽엔 안증(顔曾), 오른쪽엔 유하(游夏).[안증과 유하와 같은 유수한 제자들과 학문을 탐구하던 공자님과 다를 바가 없구나 ▶ ‘안증’은 공자의 제자인 안회(顔回)와 증삼(曾參), ‘유하’ 역시 공자의 제자인 자유(子游)와 자하(子夏)를 가리킵니다(‘문제 03번의 <보기>’ 참고)]

서책을 벗 삼으며 시 읊기를 일삼아

한가로운 가운데 깨우친 것을 [이언적 선생은] 혼자서 즐기도다.[독락(獨樂)하셨을 것이로다 ▶ 공자처럼 제자들과 더불어 학문에 정진했을 이언적을 화자가 떠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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