EBS 2018 적용 고전산문01 [0103 : 가락국 신화(작자 미상)]



천지가 개벽한 이후로[하늘과 땅이 큰 변화를 겪으며 처음 생긴 이래로] 이 땅에[한반도 남쪽 지역에] 아직 나라의 칭호가 없었고,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. 이때 아도간(我刀干)·여도간(汝刀干)·피도간(彼刀干)·오도간(五刀干)·유수간(留水干)·유천간(留天干)·신천간(神天干)·오천간(五天干)·신귀간(神鬼干) 등 구간(九干)*이 있었다.[아홉 부족의 우두머리들이 있었다] 이 추장들이 백성을 아울러 다스렸으니, 모두 백 호에[‘호’는 ‘집’ 혹은 ‘가구’를 의미합니다] 칠만 오천 명이었다. 대부분이 저마다 산과 들에 모여 살았고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었다.[구간이 다스리는 칠만 오천 명의 사람들이 농경을 위주로 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]


후한의[중국 후한 왕조의] 세조(世祖) 광무제(光武帝) 건무(建武) 18년 임인년(A.D. 42년) 3월 계욕일*에[구체적인 시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] 그들이[구간이 다스리는 사람들이] 살고 있는 북쪽 구지봉(龜旨峯)─이는 산봉우리의 이름인데, 마치 십붕(十朋)*이[거북이가] 엎드려 있는 형상이므로 이렇게 부른다.─에서 사람들을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. 그래서 무리 이삼백 명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.[‘무리 이삼백 명’이 ‘그곳’으로 모여 든 이유가 ‘이상한 소리’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기에, ‘이상한 소리’와 관련하여 “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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